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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/넷플릭스

[넷플릭스 영화추천] <설국열차> 열차라는 시스템에 갇힌 꼬리칸의 아우성

 


 

최근 <기생충> 열풍과 더불어
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이 재조명받고 있다


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

하나같이 명작이었지만
<기생충>이 이토록 세계적으로

열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
그것도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고..

 

봉준호 다시 보기 프로젝트 중 하나로
<설국열차>를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보았다
(프로젝트라고 하니 거창하다.
그냥 퇴근 후 누웠는데

생각나서 봤을 뿐인데)

 

가까운 미래
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인류는
CW7이라는 냉각제를 대기 중에 살포해
지구의 평균 기온을

적정 수준으로 낮추려 한다


이는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
혁신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
오히려 지구 전체를 얼려버리는
대재앙으로 돌아오고 만다

 

얼마 되지 않는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은
"설국열차"라는 새로운

방주에 갇혀 살아가게 되고
머리칸부터 꼬리칸이라는 물리적 경계가
곧 그들의 신분을 결정하는
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살아가게 된다

 

한번 꼬리칸은 영원히 꼬리칸이다
부모가 꼬리칸이면 아이도 꼬리칸이다
계급을 초월할 방법은 없다


꼬리칸 사람들은 오직 머리칸의 선택
혹은 필요에 의해서만 칸을 옮겨갈 수 있다

 

영화의 전반부에서는

이같은 배경 설명과 함께
마치 현대사회를 압축시켜 놓은 듯한
열차의 시스템을 보여주며
지금의 자본주의 사회가 이런 열차의 모습과
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

 

다수의 가난과 소수의 부


그것은 열차 밖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

봉준호 감독은 이 우화를 통해

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
자본주의 사회를 잔인하게 묘사하고 있다


그리고 머리칸의 윌포드를 향해

거침없이 나아가는
주인공 커티스의 모습을 보여주며
'너희도 어서 혁명을 하라!'라고

부추기는 듯하다

 

<설국열차>가 그저 그런 상업영화였으면
결말부에 이르러 결국 이 혁명을 성공시켜
관객들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

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


하지만 봉준호는 이러한

혁명의 한계를 보여주고
혁명의 실패를 보여주며 관객들을

더욱 고민하게 한다

 

머리칸에서 '열차'라는

세계를 다스리는 윌포드에게도
이러한 계급 체제의 이유가 다 있다

윌포드도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

 

'균형'

 

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기 위해선
어쩔 수 없이 다수의 희생이 필요하다
그리고 커티스의 혁명조차
인구비율의 유지를 위한

계획의 일부였음을 보여주면서
감독은 제3의 길을 제시한다

 

유색인종을 대표하는

두 아이의 열차 밖 세상

 

지금의 현대사회는

백인이 만들어놓은 자본주의 사회다
백인과 자본가들이 이끌어가는 세상이다

 

봉준호 감독은

<설국열차>를 통해 관객들에게
기존의 어른들이 만들어놓은

세상에서 벗어나
새로운 세상을 꿈꿔보자고

제안했지도 모른다

 

지금의 봉준호는 그때의 봉준호와
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까?

 

<설국열차>의 뜨거움과

<기생충>의 서늘함을
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

 

<설국열차>에서 뜨거웠던 봉준호와
<기생충>에서 차가웠던 봉준호


같은 인물의 다른 묘사 방식은
결국 동일한 메시지를

전달하고 있는 게 아닐까

 

오늘도 꼬리칸 일개미는 방구석에 앉아
내일을 위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